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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얼 선양 자료 - 유인석
글쓴이 : 최고관리자 날짜 : 2012-07-24 (화) 16:29 조회 : 2420
조선 후기의 학자·의병장.

[본 관] 고흥(高興)
[ 호 ] 의암(毅菴)
[별 칭] 자 여성(汝聖)
[활동분야] 독립운동
[출 생 지] 강원 춘성 남면
[주요수상] 건국훈장 대통령장(1962)



본관 고흥(高興). 자 여성(汝聖). 호 의암(毅菴). 1842년 강원도 춘성군 남면에서 출생하였다. 철종 때의 거유(巨儒)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에게 글을 배우다가 1868년 그가 죽자,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默)과 성재(省齋) 유중교(柳重敎)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에 힘쓰는 한편,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에도 직접 참여하였으며, 뒤에 그 자신도 제천(堤川)에서 강학(講學)하였다.

1876년(고종 13)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할 때 문하(門下)의 유생들을 이끌고 이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며,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후 김홍집(金弘集)의 친일내각이 성립되자 의병을 일으켜 충주(忠州) ·제천 등지에서 부패관리들을 죽였으나, 관군에게 패전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회인현(懷仁縣)에 은신 중 고종황제의 유지(諭旨)가 내려 한때 귀국하였다가, 1898년 다시 만주로 갔다. 1909년(융희 3) 블라디보스토크에서 13도의군도총재(十三道義軍都總裁)에 추대되어 이상설(李相卨) 등과 함께 두만강을 건너 침공을 기도하던 중 일본의 외교적 절충으로 러시아 관헌에게 체포되었으나 뒤에 석방되었다.

1910년 국권피탈 뒤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봉천성 관전현(奉天省寬甸縣)에서 병사하였다. 이항로의 학통(學統)을 계승한 학자로 문하에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복장(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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